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빅테크 규제에 대한 고삐를 죄면서 유럽에서 빅테크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반독점 위반을 이유로 EU가 대규모 과징금 폭탄을 부과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빅테크의 입지가 위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애플도 EU의 과징금 폭탄을 피해가지 못했다. 4일(현지시간) 음악 스트리밍 앱 시장에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EU 경쟁 당국이 애플에 부과한 과징금은 18억 4천만 유로(약 2조 7천억원), 애플 전 세계 매출의 0.5%에 해당한다.
애플이 2020년 프랑스에서 반독점법 위반으로 재판 끝에 3억7천200만 유로(약 5천400억원)의 과징금을 받은 적이 있지만, EU 집행위원회로부터는 처음이다.
시장에서 예상했던 과징금 약 5억 유로(7천200억원)의 3배가 넘고, 집행위가 역대 부과한 반독점법 위반 관련 과징금 규모로는 세 번째로 큰 액수다.
2018년에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운영체계(OS)로 시장 지배력을 남용했다며 43억4천만 유로를, 앞서 2017년에는 온라인 검색 때 자사 및 자회사 사이트가 우선 검색되도록 했다며 역시 구글이 24억 유로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EU 과징금 부과에 우려를 반영하듯 이날 뉴욕 증시에서 애플 주가는 3% 안팎의 내림세를 나타냈다.
애플의 과징금에 대해 EU 집행위는 "애플이 다시 이를 위반하거나 다른 기술 기업이 유사한 위반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추가 일시불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EU 집행위는 규제를 통한 빅테크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대규모 과징금 부과를 통해 블록 내 이들 기업의 지배력 해체를 타깃으로 하고 있다.
애플은 아이폰에서 자체 결제 시스템인 '애플 페이'만을 사용하도록 해 온 데 대해서도 EU 조사를 받았다. 지난 1월 '애플 페이' 외에 경쟁업체의 유사 결제서비스도 허용하기로 하면서 간신히 과징금은 면했다.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는 온라인 광고 시장에서 반독점 규정을 위반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규정 위반이 최종 판단되면 거액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투자한 스타트업과의 관계에 대해 조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EU 집행위는 오픈AI에 이어 MS가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과 체결한 파트너십에 대해 반독점 위반 조사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도 과징금을 받지는 않았지만 반독점법 위반 조사를 받았다. 2022년 12월 경쟁 입점업체도 자사 제품과 동등하게 아마존 플랫폼에 노출하는 등의 조건에 합의했다.
오는 7일부터 EU에서는 디지털시장법(DMA) 본격 시행되면서 빅테크의 입지는 더욱 약화할 수 있다.
DMA는 거대 플랫폼 사업자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고자 일정한 규모의 플랫폼 사업자를 '게이트 키퍼'로 지정해 규제하는 법이다. 애플은 물론 MS, 구글, 메타 등 빅테크 다수가 게이트 키퍼로 지정됐다.
이들 기업은 자사의 서비스를 경쟁업체에도 개방해야 하고 획득한 이용자 개인 정보의 무분별한 활용이 엄격히 제한된다.
의무 불이행 시 전체 연간 매출액의 최대 10%의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 반복적인 위반이 확인되면 최대 20%까지 상향 조정될 수 있다.
이에 애플의 경우 DMA 시행을 앞두고 몸을 낮췄다.
유럽에서 아이폰 이용자는 애플 앱스토어가 아닌 다른 앱스토어에서 앱을 다운받을 수 있고, 결제 수단도 다른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애플은 허용하기로 했다. 또 이용자가 결제시 개발자에게 받았던 수수료도 내리기로 했다.
그러나 빅테크에 대한 EU의 엄격한 규제가 소비자 보호를 명분으로 한 유럽 기업의 보호를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애플은 이날 EU의 결정에 대해 "이번 결정은 아이러니하게도 경쟁이라는 명목하에 디지털 음악 시장의 폭주하는 선두 주자인 유럽 기업의 지배적 지위를 확고히 해준다"며 "스포티파이는 유럽 음악 스트리밍 시장의 56%를 점유하고 있으며, 이번 조사 과정에서도 EU 집행위와 65차례 만났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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