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발생한 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은 용의자 천모(53·사망)씨가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라 미리 흉기와 방화에 사용할 인화물질을 준비한 상태에서 저지른 계획 범행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10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합동 감식을 해 범행에 사용한 인화물질이 휘발유인 것을 확인했다. 앞서 범행 현장에서 흉기도 확보했다.
◆ 경찰·국과수 등 합동 감식... 사건현장 처참함 그자체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은 지난 9일에 이어 10일에도 방화 현장에 대한 정밀 감식을 했다.
현장은 당시 위급했던 상황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불은 2층에서 시작됐지만 1층까지 잿가루가 날아와 바닥이 온통 검게 변했고 계단 창문이 깨지면서 유리 파편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불이 난 변호사 사무실이 있는 2층에는 여전히 매캐한 냄새가 남아 있었고, 바닥과 벽면 등은 완전히 타버린 상태였다.
불이 시작된 203호 사무실은 정밀 감식 등의 이유로 공개되지 않았지만 입구와 가까운 쪽에 있는 다른 사무실 외벽과 집기류도 대부분 불에 타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 50대 방화범, 휘발유·흉기 미리 준비
10일 이뤄진 감식 현장에서는 천씨가 인화물질을 옮기는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유리용기 3개와 인화물질이 묻은 수건 등이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확보한 증거물과 화재 현장에 흩어져 있는 연소 잔류물을 분석한 결과 불을 지르는 데 사용된 인화물질은 휘발유인 것으로 드러났다.
또 등산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제품인 것으로 알려진 날 길이 11㎝ 가량의 흉기도 현장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숨진 변호사와 사무장의 몸에 있는 상처와 이 흉기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건물 내부를 찍은 폐쇄회로(CC)TV 50여초짜리 영상에는 범행 직전 천씨가 흰천으로 덮은 뭔가를 손에 들고 건물로 들어와 범행현장인 203호 방향으로 이동한 뒤 20여초가 지나 화염이 나타난다.
이 때문에 경찰은 천씨가 203호에 들어가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20초 가량 흉기를 휘두르면서 위협을 하는 등 소란을 피우다가 불을 질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피해자들에 대한 부검이 이뤄지면 천씨가 흉기와 인화물질을 어떻게 사용해 범행했는지도 밝혀질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 월세 살면서 6억8천만원 투자... 건설사 중간간부 경력
대기업에 속하는 건설업체에서 중간 간부로 일한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천씨는 자신의 경제상황에 맞지 않은 과도한 투자를 했다가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범행을 결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천씨는 지난 2014년 수성구에서 주상복합아파트를 신축하는 시행사와 투자약정을 하고 모두 6억8천여만원을 투자했고 투자 약정 당시 그는 대형 건설업체에 소속돼 있었다.
그는 시행사의 초기사업 비용 조달을 위해 첫 투자금으로 3억2천만원을 투자한 뒤 이후 10차례에 걸쳐 3억6천500만원을 추가로 더 투자했다.
개인이 한 투자로는 다소 많은 금액이지만 범행 직전까지 살았던 천씨의 주거환경은 투자 금액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천씨는 사건 현장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는 수성구 범어동의 5층짜리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았다.
천씨 집 주변 부동산 중개업소 등에 따르면 천씨가 살았던 아파트는 방 2개와 거실과 붙은 주방이 있는 구조로 47㎡(약 16평) 규모며 천씨 집과 같은 규모의 아파트 평균 임대료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천씨의 주거 상황 등을 고려하면 그는 거의 전 재산을 투자했다가 이를 돌려받지 못하게 되자 소송을 했고 패소하자 상대편 변호사를 상대로 범행했을 것으로 보인다.
◆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 합동 빈소
피해자 6명은 모두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대구지방변호사회는 피해자 6명의 장례를 대구지방변호사회장(葬)으로 치르기로 하고 합동분향소를 설치했다.
대구변호사회는 오는 17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정해 검은 리본을 달기로 했다.
검찰을 통해 범죄피해자 배상과 피해자 장례비 지원이 이뤄지도록 했다. 또 재해보상금과 장례물품 지원, 산재 처리 등이 이뤄지도록 대구시, 수성구청 등의 협조를 요청했다.
대구변호사회는 또 전국 변호사 단체 및 유관기관을 통해 피해자 유족들을 돕기 위한 모금 절차를 진행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합동분향소 외에 피해자 6명의 유족들은 장례식장 안에 개별 빈소를 마련했고 장례는 오는 12일 치를 예정이다.
사진= 정밀감식하는 합동 감식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