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기업구조조정 리츠(CR리츠)가 10년 만에 재도입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건설사 보유 토지를 매입해 3조원 규모의 유동성 공급에 나선다.
공사비 상승,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축, 미분양 누적으로 건설업 침체가 이어지자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썼던 정책들을 정부가 다시 꺼내 들었다.
정부는 28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건설경기 회복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분양 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시행된 CR리츠 부활은 업계가 꾸준히 요구해온 사안이다.
CR리츠는 여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미분양 주택을 사들인 뒤 우선 임대로 운영하고, 시장 상황이 좋아지면 분양 전환해 수익을 내는 구조다.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운용된 CR리츠는 미분양 2천200가구, 2014년 운용된 리츠는 500가구를 각각 매입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당시 미분양 사업장을 보유한 건설사는 30% 이상 손실을 볼 상황에 놓여 있었으나, CR리츠를 통해 손실 규모를 7% 내외로 줄였고 투자자는 연 6% 안팎의 이익을 거뒀다.
정부는 지방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CR리츠에 대해 취득세 중과 배제(준공 후 미분양주택 한정)와 함께 취득 후 5년간 종합부동산세 합산을 배제하는 세제 혜택을 준다.
취득세 중과를 적용하면 세율이 12%지만, 중과를 배제하면 지방 미분양 상당수가 해당하는 취득가액 6억원 이하 주택의 경우 취득세가 1%로 낮아진다. 최대 취득세율은 3%다.
세제 혜택 적용 대상은 이날부터 내년 말까지 CR리츠가 매입한 주택이다.
정부는 양도차익 추가 과세 면제의 경우 미분양 상황을 봐가며 검토하기로 했다.
김규철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미분양이 많을 때는 19만호에 이르렀는데, 지금은 모든 정책 수단을 동원해 미분양 해소에 나설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일차적으로 취득세·종부세를 완화하고,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면 LH 매입 확약 등 더 강화된 정책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지난 1월 말 기준 총 6만3천755가구이며, 악성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은 1만1천363가구 규모다.
LH는 유동성 확보가 필요한 건설사가 보유한 토지를 3조원 규모로 매입한다.
다음 달 5일부터 토지 매도를 희망하는 기업들로부터 매각 희망 가격을 제출받은 뒤 희망 가격이 낮은 순서대로 토지를 매입하는 '역경매' 방식을 활용한다.
매입 상한 가격은 LH 등 공공시행자 공급가격 또는 공시지가의 90%로 뒀다.
매입 대상은 토지 대금보다 부채가 큰 기업의 토지다.
기업은 땅을 곧바로 매각하는 토지매입방식(2조원 규모)과 추후 필요할 때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매입확약방식(1조원 규모)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매입 확약은 건설사가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 만기를 연장받아 사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돕는 수단이다.
기업은 토지 매각대금 전액을 부채 상환에 써야 한다. LH는 부채 상환용 채권을 발행해 금융기관에 직접 지급할 계획이다.
앞서 LH의 PF 부실 우려 사업장 매입은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2조6천억원 규모)과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7천200억원 규모) 두 차례 이뤄졌다.
PF 대출 전에 빌린 사업자금인 브릿지론마저 갚지 못해 더는 사업 추진이 어려운 사업장은 LH 또는 공공지원 민간임대리츠가 매입해 사업 재구조화를 지원한다.
준공 전 미분양 PF 보증 요건 중 '분양가 5% 할인' 요건은 폐지하기로 했다.
국토부는 이번 지원으로 건설업계 입장에선 채무 조정을 통해 금융 부담이 완화되고,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투자금을 조기 회수해 재무 건전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자산관리컨설팅센터 부장대우는 "LH의 토지 매입은 역경매 방식이라 미분양 적체와 시장 침체가 큰 지방 주택사업자나, 공급 과잉 우려가 큰 물류센터, 지식산업센터 부지 위주로 먼저 움직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정부는 공공부문 공사비를 증액해 건설업계를 지원하기로 했다.
공사비 상승분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해 주요 대형공사를 중심으로 유찰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기술형 입찰로 추진해 유찰된 대형 공공공사만 4조2천억원 규모다. 유찰 공사에 대해서는 수의계약을 통해 상반기 중 공사를 정상화할 방침이다.
턴키(설계·시공 일괄입찰) 등 기술형 입찰로 추진되는 대형 국책사업의 유찰을 막기 위해 입찰 제도도 바꾼다. 입찰 탈락자에게 지급하는 설계 보상비를 높이고, 공사비를 줄일 수 있도록 관급자재 변경을 일부 허용한다.
PF 사업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10년 만에 재구성한 '민관합동 PF 조정위원회'는 상시 운영하기로 했다. 조정위를 법정 위원회로 격상해 조정력을 높이는 방안도 추진한다.
정부는 아울러 재건축·재개발 때 조합 등 사업시행자가 공공에 제공하는 임대주택 인수 가격을 지금보다 높게 책정하기로 했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사진출처=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