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3일 '리스크 관리'를 강조한 데 이어 외환당국도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글로벌 달러화 강세 속에서 원/달러 환율 상승 흐름 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이 1,346원까지 뛰어오르며 또다시 연고점을 경신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환율의 추세적 상승이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 윤 대통령 "리스크 관리"... 당국, 두달만에 구두 개입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께 "달러 강세와 원화 약세의 통화 상황이 우리 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비상경제대책회의 등을 통해 리스크 관리를 잘 해나가겠다"고 언급했다.
윤 대통령은 "달러화 강세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있다"고 전하며 "우리 경제의 재무 건전성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이것이 수입 물가를 상승시키고 국제수지를 악화해서 우리 시장에 부정적 영향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을 국민이 불안하지 않도록 잘 대비해나가겠다"고 주장했다.
환율 상황을 관망하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뒤 30분이 채 지나지 않은 오전 9시 24분 외환당국은 "최근 글로벌 달러 강세에 기인한 원/달러 환율 상승 과정에서 역외 등을 중심으로 한 투기적 요인이 있는지에 대해 면밀히 점검해 나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세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해 당국이 공식 구두 개입에 나선 것이며 외환당국의 구두 개입은 지난 6월 13일 이후 두 달여만이다.
당국은 달러화 강세에 따른 원/달러 환율 상승은 일정부분 불가피하지만 지나치게 빠른 상승세는 제어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외환시장 흐름이 달러화가 강세를 띨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있지만 시장에 어느 정도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 경계감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당국은 특히 환율 상승 상황에서 투기 수요가 몰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고 이에 구두 개입 문구에도 투기 요인이 환율 상승세를 부추기는 것은 막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추경호 장관은 이날 서울 국제금융센터에서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 관계기관 및 시장 참가자 등과 긴급 비공개 회의를 열고 외환시장 상황과 전망 등을 논의했다.
추 부총리는 회의에서 "최근 대외여건 전반이 환율 상승 압력으로 작용함에 따라 시장 심리의 일방향 쏠림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며 "특히 글로벌 달러 강세 등 대외여건에 편성해 역외의 투기적 거래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해 관계기관 간 긴밀한 공조를 통해 경각심을 갖고 모니터링을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고 기재부가 전했다.
◆ 1,346.6원까지 고점 높인 환율... 구두 개입도 역부족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5.7원 오른 달러당 1,345.5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러한 환율 수준은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9년 4월 29일(고가 기준 1,357.5원) 이후 약 13년 4개월 만에 최고치며 종가 기준으로는 지난 2009년 4월 28일(1,356.80원) 이후 가장 높다.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2.0원 오른 1,341.8원에 개장한 뒤 외환당국의 구두개입 직후 하락 전환해 오전 10시 9분께 1,336.8원까지 떨어졌지만 이내 반등해 장 마감 직전에는 1,346.6원까지 뛰었다.
오후 3시 30분 기준 원/엔 재정환율은 100엔당 979.79원이다. 전날 오후 3시 30분 기준가(977.49원)에서 2.3원 올랐다.
◆ "당국 개입, 속도 조절... 추세적 상승 지속 예상"
전문가들은 이날 외환당국이 구두 개입에 나서면서 최근 고공 행진하던 환율 상승 속도가 일부 조절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NH선물 김승혁 연구원은 "대통령과 외환 당국의 구두 개입이 나오면서 환율 상단에서 당국의 실개입 가능성에 대한 경계심이 작용할 수 있게 됐다"며 "방향성은 그대로지만 속도는 조절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의 1차적 저항선을 1,350원으로 보고 있으며 만약 이 선이 무너진다면 1,380원선을 2차 저항선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원/달러 환율의 상승이 글로벌 달러화 강세로 인해 촉발된 만큼 당국의 개입으로 추세적 상승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신한은행 백석현 연구원은 "외환시장의 큰 물줄기가 달러화 강세이다 보니 한국 외환당국의 역할을 크게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백 연구원은 "그런데도 당국이 개입한 것은 국내 경제 주체들의 불안정한 심리에 대한 최소한의 대응 차원에서 역할을 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는 "글로벌 달러화 강세가 워낙 강력한 상황이라 환율 상단이 1,350원 이상으로 열릴 가능성이 커졌다"고 강조했다.
사진= 코스피 급락, 환율 급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