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돈 이야기(39)] 반드시 이루어야 할 ‘화폐개혁’
- ‘돈’에 관한 네 개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 -
필자는 지난 글(돈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에서 기술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 ‘화폐개혁’을 잠시 언급했다. 오늘은 ‘화폐개혁’에 관해 조금 깊은 이야기를 통해 화폐개혁이 어떻게 네 가지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있는지 집중적으로 살펴본다.
우리나라의 마지막 화폐개혁은 1962년의 일이다. 60년이 넘었으니 꽤 오래된 일이다. 당시 이루어진 개혁의 내용은 10환(圜)을 1원으로 변경하는 조치였다.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원’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우리나라는 1953년 2월 15일부터 1962년 6월 9일 까지 화폐단위로 ‘환’을 사용했다.
필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화폐개혁은 지금의 1,000원을 1환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하면 가장 먼저 “화폐개혁을 하면 그냥 하면 되지 왜 화폐의 이름까지 바꾸냐? 원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왜 ‘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바꾸냐?”는 질문부터 날라 온다.
일단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원’의 경우 일본이 사용하는 화폐단위인 엔(원, 円)과 중국이 쓰는 단위인 위안(원, 元)과 같다. 한마디로 현재 한, 중, 일 3국 모두 동일한 ‘원’을 쓰는 것과 같은데, ‘환’으로 변경하게 되면 우리만의 독자적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는 측면이 있다.
이렇게 되면, 지금의 ‘10억 원’ 짜리 아파트는 ‘100만 환’이 되고, 월급 ‘300만 원’은 ‘3천 환’이 된다. 이런 조치를 통해 큰 단위의 숫자에서 생기는 계산 및 기장 등의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 왜냐하면 기존의 숫자 단위에서 ‘0’이 무려 세 개가 빠지는 효과를 보기 때문이다.
최근 환율은 미화(USD) 1달러당 1,300원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화폐개혁이 되면 1달러=1.3환이 된다. 이제 달러와 새로운 우리 돈, ‘환’은 거의 대등한 숫자가 된다. 지난 글<돌고도는 돈이야기 38>에서 언급했지만, 국가 간 돈의 가치를 말하는 ‘환율’에 있어서 자릿수의 문제는 우리 돈의 위상과 국격과도 연관성이 있다. 실제로도 우리의 경제 규모로 미루어 봐도 지금의 화폐단위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음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는 부분이다. 화폐개혁으로 이런 문제를 깨끗이 해결할 수 있다.
또 화폐개혁을 단행한다면 현행 화폐 모델에 대한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 계기가 됨과 동시에 지난 정부 5년간의 철저한 진영 갈라치기로 인해 양극단으로 갈라져 있는 국민들을 다시 하나로 통합해 화합할 수 있게 하는 촉매제로 기능할 수 있다. 왜냐하면 새로운 화폐를 제작해야하기 때문에 완전한 백지상태에서 화폐 모델에 대한 심도 깊은 검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부분 역시 지난 글에서 자세히 언급했지만, 간략히 요지를 밝히면 오로지 이조(李朝)시대 에만 국한된 지금의 모델이 아닌, 반만년 우리 역사를 빛낸 위인들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고증을 통해 모델이 선정되었으면 한다. 특히, 대한민국이 건국되는데 기여한 독립운동가나 나라를 빛낸 문화 예술인 중에서도 모델이 등장하길 기대해 본다.
아울러 화폐개혁이 되면 마늘밭에 묻어두거나 금고에 쌓아둔 어마어마한 양의 돈들이 밖으로 오게 된다. 숨겨왔던 돈들이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다. 지하에서 암암리에 각종 비자금 등 부정과 비리를 위해 쓰여진 돈들이 밖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화폐개혁이 되면 지난 돈은 쓸 수 없기 때문에 새 돈으로 바꾸기 위해 기존의 숨겨둔 돈들이 지상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이때 꼬리표를 확실히 붙이면 우리 한국경제의 심각한 문제 중 하나인 ‘지하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효과에도 불구하고, 지난 2019년 CBS가 실시한 원화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반대가 52.6%에 달하고 찬성은 32%에 불과하다. 사실 필자는 탈세나 뇌물, 범죄수익 같은 지하경제와 연관된 부류들 외에는 화폐개혁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우리 국민들은 이토록 화폐개혁에 부정적일까? 이 지점에서 필자는 다수의 국민들이 화폐개혁에 대한 가짜뉴스의 영향을 받아서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현재 화폐개혁 반대론자들은 화폐개혁으로 인한 문제점으로 크게 ‘물가 상승과 천문학적인 화폐 교체에 따른 비용, 그리고 지하 자금의 준동에 따른 사회적 혼란’,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이들은 앞으로도 화폐개혁이 이루어지지 않기 위해 갖가지 크고 작은 이유들을 지속 생산해 낼 것이다. 하다 하다가 안 되면 ‘개혁 시기상조론’이라도 들고나올 태세다.
화폐개혁 반대론자들은 물가 상승의 원인으로 ‘착시현상’을 강조한다. ‘0’을 세 개 지우는 화폐개혁은 기존 단위에 비해 가격이 싸게 느껴지는 착시현상 때문에 판매자들이 거부감 없이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올릴 것이라는 주장이다. 화폐개혁이 이런 식의 물가 상승을 일으킨다고 주장한다.
완전히 터무니없는 지적은 아니다. 분명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가장 실효적인 대책은 이렇다. ‘환’ 밑에 다시 ‘전(錢)’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달러와 센트를 쓰는 것처럼 말이다. 예를 들면 7,500원은 7.5환이 아니라, 7환 50전으로 쓰는 것이다. 게다가 ‘전’은 현재도 환거래에서 쓰이는 법정 화폐단위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착시현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일정기간 동안은 가격에 ‘원’과 ‘환/전’, 두 가지 방식으로 표기하는 방법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반대론자들은 화폐개혁에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 것이라 말한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새로운 화폐의 제작비다. 수천억이 될 것이라 주장하는데, 여기서 전제로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지금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신용카드 및 각종 페이(pay) 때문에 일상에서 현금은 점점 필요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노점상에서 계좌번호를 걸어 두고 판매하고 있는 모습은 이미 오래된 풍경이다. 이유는 단순명쾌하다. 과거처럼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이 잘 없을 뿐 더러,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로 안전하게 자신의 휴대폰 단말기를 통해 몇 초 만에 송금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화폐개혁을 통해 아예 실물 화폐를 없애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제작비용은 물론 해마다 엄청난 관리비가 절약될 것이다. 너무 파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렇다면 당장은 새 화폐의 권종과 수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만일 새로운 화폐가 발행된다면 절대 고액권은 발행해서는 안 된다.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자칫 지하경제의 자양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5.9일 기사)에도 불법도박 운영자들의 은거지를 경찰이 급습했는데 무려 50억 원이 현금으로 고스란히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오만원 고액권이 없었다면 보관은 매우 어려웠으리라. 기자는 친절하게도 적발한 전체 금액을 비추며 설명해 주고 있었는데, 50억 원은 생각보다 많은 양이 아니었다. 테이블 위에 수북이 쌓아 올린 수준이었다. 방을 가득 채우는 산더미 같은 양이 아니더란 얘기.
화폐개혁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또 다른 비용에는 화폐 체계가 바뀜에 따라 관련 프로그램을 변경하고 ATM이나 자판기 같은 연관 기기의 교체나 기능 수정 등이 있다. 이 금액을 추정하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금융회사, 특히 은행의 부담이 클 것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은행의 ‘부담’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매우 많다. 가계대출의 증가로 수년간 은행의 수익은 해마다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는 데다가, 특히 글로벌에 걸친 가파른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2022년과 2023년 1분기, 은행들은 역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예대 금리차로 인한 은행들의 마진은 수조 단위가 아니라 수십조에 이른다.
또 은행은 주식회사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수익의 많은 부분은 주주의 몫이고, 주주의 절반 이상이 외국인이다. 화폐개혁으로 은행의 수익이 국내 산업에 투입되면 국가 경제에 매우 유익한 일이다. 따라서 화폐개혁을 하면서 은행과 금융회사의 부담을 걱정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이게 끝이 아니다. 개혁 반대론자들은 화폐개혁 때문에 지하에서 잠자던 돈이 움직이면서 부동산이 폭등하고 사회 혼란이 극심해질 거라 위협한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들며 ‘화폐개혁이 나라를 망친다’는 주장도 펼친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화폐개혁 반대론자들의 비판은 거의 협박 수준이다.
먼저, 지하에서 잠자던 현금이 화폐개혁이 되면 지상으로 나와 부동산을 사들인다는 주장을 보면 익명성이 보장되는 금(금괴)의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지만, 부동산은 다르다. 취득자 스스로를 노출시켜야 하고, 자금 출처 또한 따질 텐데 그런 모험을 감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과장된 시나리오가 아닐 수 없다.
사실 1962년의 화폐개혁은 군사작전처럼 진행됐다. 철저한 보안 속에서 준비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일정액만 새로운 화폐로 교환해주고, 나머지는 강제로 은행에 예치해야 했다. 당연히 혼란은 극심했고, 민심이 흉흉해지자 정부는 강제 예치를 철회하면서,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의 화폐개혁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작금의 스마트, 인터넷 시대에 전격적으로 군사작전처럼 화폐개혁을 단행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울러 일방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로드맵을 공개하고, 국민들의 지지와 협조를 끌어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여러 가지 문제들도 발생하겠지만, 경험과 지혜를 모아 대책을 세워 하나하나 해결해가면 될 일이다. 베네수엘라가 화폐개혁으로 망했다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가짜뉴스다. 베네수엘라는 경제가 무너지니 화폐개혁을 시도했지만, 이미 효과가 발휘될 수 없는 지경이었다. 하 수상한 시절이라 그런지 비논리적이고, 맹목적으로 과장된 반대론자들의 주장이 들어 먹히고 있는 요즘이라 안타깝다. 앞서 본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지만, 정부나 정치권도 화폐개혁에 시큰둥한 것은 매한가지다. 그간 몇 차례 논의가 시작되나 싶더니, 이내 흐지부지됐다. 사실 ‘지하경제 양성화’라는 말이 사라진 상황에서 화폐개혁에 소극적인 것은 어느 부분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하경제 양성화’를 대선공약으로 삼고 이를 통해 27조를 마련하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제시했었다. 유감스럽게도 말로 끝난 게 현실이지만, 어쨌든 그 후 문재인 정부에서는 말조차 없었고, 지금 정부도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다.
지하경제는 ‘정의롭지 않다’는 차원을 넘어 불공정 사회를 유발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심각한 경제, 사회적 문제다. 지하경제의 확장이 사회의 존립에 위협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화폐개혁이 지하경제를 완전히 종식시키지는 못하더라도 상당히 위축시킬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제라도 정부는 국민들에게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사실과 통계에 기반해 설명해야 하고, 국민 스스로는 화폐개혁을 요구해야 한다.
그래도 여전히 가슴 한 구석에는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다. ‘화폐개혁에 부정적인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반대론자들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하경제의 영역에 존재하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보통 사람과는 거리가 먼 비자금, 뇌물, 범죄수익은 차치하고 ‘탈세’하나만 따져보자.
‘현금 장사’라는 말이 있다. 과거에는 외상이 없어서 좋다는 의미였겠지만, 요즘은 현금으로 거래하기 때문에 매출을 숨길 수 있다는, 즉 탈세에 유리하다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일상에서 현금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되었는데, 아직도 ‘현금 장사’의 특혜를 누리는 곳이 있다. 현금으로 결제하면 할인해 주는 성형외과 및 병의원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 변호사 사무실에서 수임료는 카드가 가능하지만 ‘성공보수’는 얘기가 다르다. 작년 국세청의 고소득 전문직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적출률’이 37%에 이른다. 의사나 변호사들이 소득을 그만큼 축소 신고했다는 의미다. 고소득 사업자는 한술 더 떠 50%가 넘는다.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숨긴 셈이다. 결국 모두 탈세한 것이다.
백번 양보해 성형외과나 변호사 사무실은 살면서 안 가면 그만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갈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부동산 사무소다. 필자는 지금까지 공인중개사 사무소에서 카드 결제가 되는 곳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수수료는 대부분 현금 계좌이체다. 필자의 지인이 현금영수증을 달라고 공인중개사에게 말했더니, 그러려면 10% 부가세를 별도로 내라고 했단다. 이건 명백한 불법 행위다.
물론 모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소수의 일탈로만 보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사회의 지도층에 있다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익 때문에 지하경제에 한 발씩 담그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다. 정도의 문제이지 우리 주변에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그들이, 아니 이런 우리들이 지하경제의 양성화에 긍정적일까? 선뜻 답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러나 아무리 숙고를 거듭해봐도 근시안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 경제와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하경제는 양성화 되어야 하고, 화폐는 개혁되어야 옳다. 단점보다는 유익함이 만 배는 많다. 아무쪼록 화폐개혁 문제가 공론화될 수 있도록 영향력 있는, 눈 밝은 이들의 움직임을 진심으로 바래본다.
글 강건욱 / 문예지 기자 및 인문학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예술과 문학, 대중문화에 관한 칼럼과 평론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문화평론가 및 프리랜서 인문학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 및 콘텐츠를 기획, 모더레이팅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