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도는 돈 이야기(29)] 투자의 시작은 자신의 ‘집’에서부터
- ‘살아야(Living) 하는 집이냐, 살고 싶은(Want to live) 집이냐?’ -
‘월가(Wall Street)의 영웅들’이라는 베스트셀러 투자서를 지은 세계적인 펀드 메니저, 피터 린치(Peter Lynch, 1944~)가 남긴 명언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주식에 투자하더라도 내 집은 꼭 마련하고 시작하라.”
주식투자를 통해서 거대한 부(富)를 이룬 그조차도 일단 거주의 안정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다. 자신만의 거주지에서 오는 안락함과 평안은 투자에 있어 수치화할 수 없는 안정(安定)을더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피터 린치가 말한 ‘내 집’은 투자의 목적이 아니다. 가족이 살아가는 주거로서의 공간이자, 심리적 안정을 바탕으로 주식이나 채권 등 기타 투자에 매진한다는, 소위 ‘다음 단계(Next Step)’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내 집에서 거주하는 것과 남의 집에서 전세나 월세로 거주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또 경제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다.
남의 집에서 살고 있다면, 우리의 잠재의식 한 켠에는 언제나 일정부분 불안심리가 존재하고, 또 재계약에 대한 걱정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이런 걱정은 비단 피터 린치만의 생각이 아니다.
유럽의 ‘워런 버핏’으로 불렸던 전설적 투자자, 앙드레 코스톨라니(André Kostolany, 1906~1999)는 집의 가치에 대해 이처럼 말했다. “나는 자신이 거주할 집은 주택이든 아파트든 가능하면 사라고 권한다. 상승하는 집세와 집주인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말로 표현하면 거주용 주택과 투자용 주택, 전원주택(별장)을 두루 보유한 이른바 ‘집 부자’였다. 물론 그는 갑부였기 때문에 보유한 집이 많으니 필요에 따라 골라 이용하면 되었지만, 자금 사정이 빤한 일반인에게는 집 한 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대한 목표이자, 상기 언급한 대로 ‘편안한 투자’를 위한 바탕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일반인에게는 ‘실제 거주하는 집’ 한 채가 전부일 수 있다. 따라서 갑부들처럼 용도별로 주택을 마련할 수 없다면, ‘사는(Living)’ 집과 ‘살고 싶은(Want to live)’ 집을 놓고 ‘현명한 선택’이 필요하다. 현명하게 선택한다는 것은 역으로 현명하게 포기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조지장식 필택기림(鳥之將息 必擇其林)’이라는 고사(古事)가 있다. ‘쉬려고 할 때는 새들조차 반드시 숲을 고른다’는 의미다. 새도 주거지 선택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한다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오죽하랴.
특히, 노년기에 접어들수록 주거지 선택은 실로 중차대한 문제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은퇴 설계는 집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끝난다”고 할 정도로 주거 계획은 노후 설계의 핵심이 된 지 오래다. 유럽도 우리처럼 부동산 자산(=비금융자산)이 전체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미국 대비)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변의 어르신들을 둘러봐도 은퇴하거나, 나이가 들면 생활 범위가 집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다 보니 70대는 70%, 80대는 80%의 삶이 거주지를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면 노후의 삶은 전원이 좋을까, 도심이 좋을까?
가상의 모델을 예로 들어보자. 서울 여의도의 모 아파트에 사는 김훈 씨(가명, 61세)는 은퇴 후 미세먼지 없는 공기 좋고 조용한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살고 싶지만, 막상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최근 그는 전원주택부지를 고르기 위해 가평과 홍천 일대를 다녀왔다. 그러나 쾌적한 환경만 보고 탈서울을 감행하는 게 과연 옳은 건지 별별 생각이 든다. ‘평생을 대도시에서 부대낀 내가 한적한 시골 생활에 적응할 수 있을까?’, ‘혹시 이미 도시 생활의 편리성에 중독된 건 아닐까?’ 하는 이런저런 고민 말이다.
더욱이 아내의 시큰둥한 반응도 김 씨의 고민이 깊어지는 또 하나의 이유다. 김 씨처럼 바쁜 도심을 떠나 평온한 전원의 삶을 즐기고 싶어 하지만 냉엄한 현실 앞에서 갈등한다. 설문 조사 결과를 보면 나이 들어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응답은 생각보다 높게 나타난다. 실제로 어느 연구에서 50대 이상의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노년기로 접어들수록 어디서 살고 싶은가?’하는 내용의 설문 조사를 했더니, 10명 중 6명이 ‘시골 또는 교외에서 전원생활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나 막상 ‘언덕 위의 하얀 집’에서 살겠다는 꿈을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연애와 결혼 생활이 다르듯 꿈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전원 거주 의향이 높게 나타나는 이유는 답답한 현실의 탈출구로서의 전원생활(田園生活)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전원생활의 꿈은 정글 같은 한국의 대도시에서 펼쳐지는 무한 경쟁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싶은 욕구, 그리고 콘크리트 도시에서 탈출해, 여유로운 들판의 풀벌레 소리 들리는 목가(牧歌)적인 생활을 그리는 원초적인 욕망이 함축되어 있다는 얘기다.
이런 점에서 삶의 여유를 상징하는 전원생활은 이루기 힘든 ‘인생의 로망’이자 현대판 ‘무릉도원 찾기’일지도 모른다. 전원생활을 하겠다는 설문 조사의 응답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점을 볼 때 전원의 꿈은 사실 과대하게 계상(計上)되어 있는 셈이다.
현재 50-60대를 이루고 있는 한국의 베이비부머(戰後世代, 1955-74년생) 세대는 이미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에 익숙해진 데다가, 앞으로 병원을 자주 이용해야 하는 연령대로 진입하는 특성상, 전원행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점점 은퇴가 늦어지면서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는 도심을 빠져나가기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오히려 수도권이나 교외 지역을 선택하는 비율은 은퇴 이후 연령 집단이 아닌, 35~45세 집단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다. 실제로도 자녀의 아토피 치유나 대안 학교 교육 등을 이유로 전원행을 택하는 젊은 층이 눈에 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전원을 꿈꾸지만, 막상 절대다수는 도심 아파트살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남편의 입장에서는 부인의 반대가 아주 큰 요인이다. 전원주택살이를 하면 쇼핑하기도 힘든 데다 지인 만나기도 어려워 사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부의 노동’을 대가로 나머지 가족 구성원이 행복을 누리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또 전원주택 특성상 자연과 맞부딪쳐 살아야 하는 만큼, 집주인의 잔손이 많이 간다. 아파트에서는 경비원이나 관리사무소 직원이 화단을 가꾸거나 계단 청소 등 환경 정리를 하지만, 전원주택에서는 집주인이 직접 해야 한다. 눈도 모두 집주인이 치워야 한다. 그만큼 집을 유지하는 데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는 얘기다. 집주인을 대신해 주택을 관리하는 주택임대관리회사가 우리나라는 활성화되지 않은 것도 이렇게 편리한 ‘아파트 문화’ 때문이다. 단독주택은 집주인이 부지런해야 잘 살 수 있지만, 이처럼 공동주택인 아파트는 별도의 관리인이 있어 집주인이 다소 게을러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물론 남자가 주도적으로 집안 살림을 분담한다면 여성의 노동은 많이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이 어디 그런가. 한두 번 집안일을 도운 게 전부면서, 자신이 전부 집안일을 도맡아 한 것처럼 으스댄다.
얼마 전, 어느 잡지에서 땅콩주택을 지은 60대 부부의 전원생활을 인터뷰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주부는 남편의 게으름과 무관심에 이렇게 불만을 털어놨다. “이곳으로 이사만 오면 모든 것을 다 해주겠다더니, 전등 하나 안 가는데 뭘 바래요?” 남성 독자들에게 지탄의 대상이 될수 있겠지만, 대체로 전원주택은 천장이 높아 사다리 위에 올라가 전등을 갈아야 하므로 전등을 교체하거나 그밖에 시설물을 점검하고 관리하는 일은 기왕이면 남자가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한편, 남자들도 텃밭을 가꿀 때 처음에는 열성을 보인다. 막 시작한 텃밭 가꾸기는 꽤나 흥미 있는 소일거리기도 하고, 또 수확의 기쁨도 맛볼 수 있어 처음 해보는 입장에서는 만족스러운 경험이다. 씨를 뿌려 싹이 트면 ‘생명의 신비’에 감동마저 느낀다. 하지만 6개월을 분기점으로 상당한 변화가 일어난다. 이 시기는 바로 소일거리가 ‘노동’으로 바뀌는 시점이다. 이때쯤이면, 호미의 손잡이는 남자에게서 여자로 넘어간다.
전원생활을 시작하기 전 대부분의 남자들은 텃밭 가꾸기에 환상이 있다. 그러나 “텃밭을 제대로 가꾸려면 100평만 넘어도 경운기를 사야 한다”는 말에 화들짝 놀란다. 아니, 그럼 그 넓은 논밭을 삽이나 괭이로 일구려 했단 말인가.
이처럼 많은 남자들이 구름 위의 꿈과 냉엄한 현실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전원주택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남자들이 꿈에서나 그리는 로망일 뿐이다. 그러니 은퇴를 앞둔 남자들이여, 전원주택 행을 결심하려면 반드시 아내의 확실한 동의를 받기를. 그리고 가사노동을 어떻게 분담할지 리스트도 꼭 작성해라. 또 아내들은 반드시 남편에게서 ‘이행각서’를 받아놓아라. 그렇지 않으면 전원주택 행은 새로운 행복의 시작이 아닌, 두고두고 후회할 일로 변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연평균 노동시간이 길기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서울의 화려한 야경은 ‘샐러리맨의 고혈을 짜서 밝힌 불빛’이라는 말이 있을까. 아직도 ‘저녁이 없는 삶’을 사는 대부분의 샐러리맨에게는 집과 일터가 가까운 게 최대 복지다. 그렇다 보니 결국 주거지도 어쩔 수 없이 도심에 있어야 하는 법.
결국, 대부분의 우리 일반인들에게 있어 투자와 거주의 분리, 그리고 살아야(Living) 하는 집과 살고 싶은(Want to live) 집 중에서 선택해야 하는 고민은 실제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든 ‘상상(想像) 속의 고민’ 아닐까.
글 강건욱 / 문예지 기자 및 인문학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예술과 문학, 대중문화에 관한 칼럼과 평론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문화평론가 및 프리랜서 인문학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 및 콘텐츠를 기획, 모더레이팅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