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를 위한 空間(31)] 부끄러움을 상실한 우리 정치인들
- 그는 소시오패스다 -
필자는 모 방송국에서 주말마다 방영하는 시사다큐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를 종종 시청한다. 익히 알다시피 굵직한 강력 사건이나 사고의 내용에 대해 추적하는 프로인데, 그렇다 보니 범죄심리학 교수나 심리학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사이코패스(psychopath)’의 뇌 구조는 우리 정상인의 그것과는 다르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사이코패스와 정상인의 뇌를 MRI(자기공명영상)로 촬영해 비교하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기능을 관장하는 뇌 구조에서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사이코패스는 ‘전문측 전두피질(anterior rostral prefrontal cortex)’과 ‘측두극(temporal pole)’ 부위에서 수축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는데, 이 부분은 동정심과 죄책감, 당황스러움을 비롯한 사회적인 감정을 처리하는 데 관여하는 기관이다. 사이코패스는 이 부분이 정상인보다 작아서 타인에 대한 감정이입이 어려운 것은 물론이고, 죄책감이나 수치심 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한다. 한 마디로 ‘공감(共感)’을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이코패스의 뇌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자신의 범죄나 잘못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거나 태연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경우가 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소시오패스(sociopath)’의 개념으로 설명한다. 소시오패스는 사이코패스와는 달리 후천적인 영향이 절대적이다.
소시오패스는 자라온 환경과 인간관계 등에 의해 형성된다. 사이코패스와의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이미 옳지 않은 행동임을 인지한 상태에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잘못을 저지른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소시오패스는 유전적인 영향에 따른 사이코패스보다 더 악랄하고 치밀한 부류로 분류된다. 잘못임을 알면서도 한 치의 부끄러움 없이 매우 ‘계획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기 때문이다.
모든 잘못에 대한 뉘우침은 ‘부끄러움’에서 시작한다. 부끄러운 줄 아는 그 순간이 곧 참회(懺悔)와 속죄(贖罪), 그리고 회심(回心)의 출발점이다.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 것은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것이고, 상대의 감정, 피해자의 감정을 배려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흔치 않은 경우를 21세기 대한민국의 지도자 중 하나인 ‘제1야당 대표’에게서 보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갖가지 부정부패 및 비위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 된 범죄피의자이자 제1야당 대표인 이모씨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지난달 말 부결되었다. 통상 검찰이 체포를 요청하는 것은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법무부 장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그는 야당 대표 구속의 필요성에 대해 국회에서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장동 사건, 위례 사건, 성남FC 사건은 죄질과 범행의 규모 면에서 단 한 건만으로도 구속이 될 만한 중대 범죄들입니다. 법률에 정한 구속 사유인 도망의 염려란 화이트칼라 범죄에서는 곧 중형 선고의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그렇다. 이처럼 지능적인 화이트칼라 범죄에서는 중형 선고의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설사 대통령일지라도 구속해서 수사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은 이어서 이런 말을 남겼다. “유력 정치인이기 때문에 도망갈 염려가 없다는 주장대로라면, 이 나라에서 사회적 유력자는 그 어떤 범죄를 저질러도 구속되지 않아야 하고, 전직 대통령, 대기업 회장들은 왜 구속되어 재판을 받은 것인지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 제1야당 대표는 2016년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검찰의 대면조사를 거부하자 트위터를 통해 “대통령의 수사 불응은 이미 예정된 것, 법 앞에 평등함을 증명하기 위해 불법적 수사 불응에 모든 국민과 동일하게 체포영장을 발부해 강제 수사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오는 순간 수갑을 채워야 한다”고 까지 말했다. 그렇게 법이 만인(萬人) 앞에서 평등해야 한다고 부르짖던 그가 스스로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말을 뒤집었다. 한술 더 떠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기소 이유를 언급할 때마다 매번 “상상으로 소설을 쓰고 있다”며 폄하했다.
사실 그의 태도 돌변은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언행 불일치와 거짓말은 그에겐 이미 오래된 습관이기 때문이다. 최측근들이 연이어 구속되고, 수십 년간 지속 관계를 맺어오던 사람들이 자신이 관련 책임자로 있을 때의 일로 수사를 받아도, 사과 같지 않은 사과와 거짓 해명을 운운하며 변명만 되풀이하는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이미 그는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 등 주어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며 버티는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지금 우리 국민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사람이 여전히 제1야당의 대표로서 국정의 파트너로서 자리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도 모자라 일 년 앞으로 다가온 내년 총선까지 절대적 당권(黨權)을 행사하며 총선을 진두지휘할 기색까지 내비치고 있다.
그는 시장(市長)을 역임했고, 도지사를 지냈고, 지금은 국회의원에 야당 대표까지 하고 있다. 실로 오랜 기간 공공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책무를 다한다는 공무직을 역임해오고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그는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자다. 그런 사람이 국민들의 요구와 목소리를 무시한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하게 그 자리에 있는 것, 이것은 죄다. 그것도 중죄(重罪)다. 그건 바로 주인에게 머슴이 대드는 죄다. 이 죄의 경우 법률에서 말하는 죄는 아닐지 몰라도 역사와 국민 앞에서는 매우 무거운 죄다. 그의 죄과는 과거형을 넘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미래에까지 진행되어 훗날이라도 단죄되어야 할 죄과가 틀림없다.
이 와중에 그의 최측근 중 한 사람이 얼마 전 또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측근의 다섯 번째 죽음’의 근원적인 전말(顚末)에 대해 온 국민이 묻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답을 할 생각이 없다. 과거 당대표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쯤 되면 도의적으로라도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는 게 기본적 도리이건만, 당내에서 결단을 요구해도, 또 제 3자가 질문을 해도 그는 철저히 자신과는 일말(一抹)의 관계도 없다는 듯 외면을 거듭한다. 이러니 답답함과 부끄러움은 오롯이 국민의 몫이다.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와 ‘이토록 치밀한 배신자’ 등 베스트셀러 심리학 서적의 저자인 하버드 의대 정신과의 마사 스타우트(Martha Stout, 1953~) 교수는 소시오패스의 특징을 다음의 여덟 개의 문장으로 정리하고 있다.
1.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하며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는 데 아주 능숙하다.
2. 보통 이상의 자극을 필요로 하며, 그래서 자주 사회적, 신체적, 경제적, 법적 위험을 무릅쓴다.
3. 다른 사람들을 유혹해서 자신의 위험한 모험에 동참시키며, 거짓말과 기만행위, 기생적인 친구 관계 등으로 유명하다.
4. 자신의 성공을 위해 어떠한 나쁜 짓을 저질러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법이 없다.
5. 능수능란한 거짓말로 자신의 성격을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위장한다.
6. 자기 잘못이 들통날 경우, 동정심에 호소하거나 지지자들을 선동해서 위기를 모면하고자 한다.
7. 매사에 냉정하고 다른 사람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고 연민(憐愍)의 마음이 없다.
8. 타인이 받는 고통을 큰 목적을 위한 희생이라고 합리화하며, 약속을 어기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잦다.
‘소시오패스의 특징’에 관해 읽은 당신의 머릿속에는 누가 떠오르는가?
스타우트는 이에 대한 대처법도 여덟 개의 문장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는 우리 국민들이 2023년 현재, 우리 정치에 의해 겪고 있는 정신적 상태, 즉 좌절과 절망, 무기력, 우울증, 수치심을 다소 완화하는 치유법이 될 수 있겠다.
1. 글자 그대로 양심이 없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라.
2. 상대의 경악스러운 행동에 이해가 되지 않거나, 또 믿어지지 않는다 해도 상대가 이상한 거라는 자신의 판단을 믿어라.
3. 새로운 관계를 고려할 때는 상대가 제시하는 주장과 약속, 책임을 준수하는지 규칙을 준수하라.
4. ‘존경’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라. 우리는 흔히 두려움을 존경으로 착각하고 누군가를 두려워할수록 그 사람을 더욱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려움을 증폭시켜서 지지를 얻는 정치가는 합법적인 정치가이기보다는 성공한 사기꾼일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는 것을 잊지 마라.
5. 그들의 게임에 동참하지 마라. ‘음모’는 소시오패스의 도구다. 매혹적인 소시오패스와 경쟁하려는 유혹, 잔꾀로 그를 이기거나 정신을 분석하거나 그와 즐기려는 유혹을 떨쳐내라.
6. 그들을 당신의 삶에 받아들이지 마라.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이 마음 상해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것은 없다. 그들은 상처받을 감정이라는 것이 애당초 없기 때문이다.
7. 쉽게 동정하지 마라. 만일 당신이 딱하게 여기는 누군가가 당신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해를 입히거나 동정을 얻고자 한다면, 백 퍼센트 소시오패스로 보면 된다.
8.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을 구제하려고 애쓰지 마라.
‘소시오패스에게 속지 않는 법’을 읽은 당신, 다시 누가 떠오르는가?
마사 스타우트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양심이 존재하지 않는 소시오패스는 다른 사람들과 진정한 관계로 연결되는 능력이 없다.”
사람들과 ‘진정으로’ 연결될 수 없는 정치인, 지금 당신은 누가 떠오르는가?
글 강건욱 / 문예지 기자 및 인문학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예술과 문학, 대중문화에 관한 칼럼과 평론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문화평론가 및 프리랜서 인문학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 및 콘텐츠를 기획, 모더레이팅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