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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미혼(old single)을 위한 나라는 있는가?

강건욱 칼럼니스트 입력 : 2023.03.20 수정 : 2023.03.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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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늙은’ 미혼을 위한 나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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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를 위한 空間(30)] 늙은 미혼(old single)을 위한 나라는 있는가?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늙은’ 미혼을 위한 나라도 없다 -

 

영화 <은교>에서 주인공인 시인(詩人) 이적요(박해일 扮)는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만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라는 대사를 한다. 서기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는 이적요의 이러한 외침이 하루하루 무색해져 가고 있다.

 

올해 43세가 된 노총각 ‘구보’는 평소 습관대로 라디오를 들으며 출근길에 오른다. 그는 5년 전부터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하고, 프랜차이즈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주변의 자영업자들은 창업한 지 1년도 안 돼 절반이 문을 닫았지만, 다행히 그의 가게는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한 매상을 올리고 있다.

 

여기서 ‘먹고 살 만한’이라는 말은 그리 거창한 규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아르바이트생 세 명(주말 알바 1명 포함)의 인건비와 점포 임대료 및 각종 운영비를 제외하고 가져가는 돈이 집세 등 생활비를 충당하고, 국민연금 몇 푼을 붓는 정도라는 뜻이다. 구보는 아직 미혼이라 자신만의 의식주에 필요한 비용 외에는 딱히 돈 들어갈 일이 없다. 집도 없지만, 그 흔한 빚도 없다. 그래서 외롭지만 홀가분하다.

 

길이 막힐 때쯤, 마침 즐겨 듣는 라디오 시사프로에서는 모 대학교수의 다소 흥분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2008년에 금융위기를 겪었던 미국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에요. 정말 신기해요. 왜 안 터지죠? 매년 가계부채는 늘어나기만 했고, 근 이십 년간 터진다, 터진다 하는데 안 터지는 게 참 신기한 거에요, 지금 상황이요.”

 

이 말에 구보는 얼마 전, 국민 한 사람당 빚이 7,000만 원에 달한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아, 그게 정말이었구나. 그렇다면 IMF 비슷한 게 또 오는 거 아니야?’ 구보는 고등학생이었던 1997년 그날의 악몽이 잠시 스쳐 갔다. 작은 사업을 하시던 부모님이 망해 온 가족이 생면부지인 곳으로 이사 다니며 고생했던 시절이 떠오르자 순간 진저리쳐졌다.

 

그러나 구보는 이내 우쭐해졌다. 일 인당 평균 빚이 7,000만 원이라는 데 자신은 빚 한 푼 없으니 ‘난 부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울하기도 했다. ‘허무하게 시간만 흘러갔구나. 남들은 초혼을 넘어서 재혼이다 뭐다 하는데, 나는 마누라도 없고 자식도 없네.’

 

구보도 30대 시절 누군가를 만났고, 결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것저것 따져 보니 도저히 결혼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귀한 혼기(婚期)를 날려 버리고, 처자식도 없이 살아온 인생. 그래서일까? 구보의 조울증은 요즘 들어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든다.

 

“아니, 결혼을 왜 해요? 누구 좋자고 결혼을 하나요? 그건 ‘헬 게이트’로 가는 지름길이라고요. 그리구 사장님은 40도 넘었는데 결혼은 무슨 결혼이에요? 그냥 살던 대로 혼자 사세요.”

설상가상으로 전형적인 ‘Gen Z’인 스물두 살 먹은 여(女) 알바생이 한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무뚝뚝하긴 해도 아주 성실해서 연말에 정직원으로 뽑을까 생각 중이었는데, 가끔 이렇게 염장을 지른다.

 

이 친구의 말을 빌리면, 요즘 젊은 세대들이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한단다. 취업은 잘 안되고, 그러다 보니 결혼은커녕 연애도 하기 힘들단다.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어려운데 연애는 사치 중 사치라는 말까지 한다.

 

알바생의 말에 구보는 “그래도 넌 젊잖아. 청춘 때는 다 아픔을 겪는 법이야”라고 말하려 하다가 말았다. 괜히 성질만 돋울 것 같아서였다. 가뜩이나 사람 구하기도 힘든데, 이 친구가 관두면 큰일 나니까.

 

하긴 구보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집만 놓고 봐도 그렇다. 집 살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닌데, 가게 운영을 생각하면 대출을 받는다는 게 덜컥 겁부터 났다. 게다가 가정이 있는 게 아니니 딱히 자기 명의의 집이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이쯤 되니 구보는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 고사가 떠올랐다. 도대체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일까,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나로 변해 있는 걸까? 도대체 내가 집이 없어서 결혼을 못 한 걸까, 아니면 결혼을 못 해서 집이 없는 걸까?

 

가끔 만나는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구보는 더 답답해진다. 미래와 노후가 단단히 보장된 공무원 친구 왈(曰), “너 00단지 알지? 우리가 학교 다닐 때 많이 지나다녔잖아. 그 아파트 00평을 얼마 전에 샀어.”

 

이 말을 듣고 ‘야, 진짜 좋겠다’라고 호응해주면 정작 다른 답이 돌아온다. “아니야, 죽을 맛이야. 금리가 올라서 대출이자도 늘었고. 그래도 너는 행복한 줄 알아라. 빚도 없고, 부양할 가족도 없으니 니가 망고땡이지.” 이렇게 말하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그게 자랑인지 아님, 엄살인지 구보는 당최 판단이 어렵다.

 

대기업에 다니는 또 다른 친구는 이미 집을 마련한 지 오래다. 결혼도 일찍 해서 큰아이가 벌써 중학교에 입학한단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구보는 다시 착란 증세를 겪는다. 내가 이 친구들 말처럼 진짜 행복한 건가? 내가 제일 속 편한 게 맞는 건가? 자기들처럼 연금이 보장되길 했나, 아무것도 없는 나는 앞날이 두렵고 외롭기만 한데?

 

구보는 이내 영화 <25시>의 주인공, 요한(앤서니 퀸 扮)으로 빙의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원작자인 루마니아의 대문호, 게오르규(Constantin Gheorghiu, 1916~1992)가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앤서니 퀸의 표정은 압권(壓卷) 그 자체다. 수년에 걸쳐 상상하기 힘든 고초를 이겨내고 정작 집으로 돌아와 그토록 그리던 부인과 가족을 만났지만 기쁜 건지 아님, 슬픈 건지, 웃는 건지 아님, 우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그 표정. 구보도 그랬다. 웃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울기도 싫었다. 구보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행복한 걸까 아님, 불행한 걸까?’

 

이내 구보는 자신과 같은 ‘늙은 미혼’들이 앞으로 늙어가는 대한민국에 더 늘어날 것이란 강한 예감에 사로잡히면서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옆에서 누군가 구보를 흔들었다. “구보야! 구보야 괜찮아? 무슨 꿈 꿨어?” 그 소란에 구보는 잠에서 깼다. 구보의 등은 온통 땀으로 젖어있었다. 악몽이었다. 아니, 악몽의 시작이었다.

 

200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8개 부문에 걸쳐 노미네이트 되며, 그해의 최대 화제작으로 불렸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영화가 있다. 저명한 영화감독인 코엔 형제의 작품인데, 미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인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 1933~)의 소설을 영화화했다.

 

이 작품에서 나이 든 보안관 벨(토미 리 존스 扮)은 이런 말을 한다. “개 목걸이만 두른 채 도망치는 노인을 한번 떠올려봐. 근데 그게 상상이나 할 수 있는 행동인가? 하지만 이제는 그쯤은 돼야 쳐다봐 주거든.”

 

오늘날 우리 사회의 저변을 보면 ‘늙은이들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라는 대사가 왜 이리 가슴에 와닿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그러나, 늙은 미혼을 위한 나라도 없다. 기업들의 생산성 악화, 고용 부진, 저출산 고령화 등 국내외에 걸친 여러 동인(動因) 때문에 한국 사회는 쉽사리 성장해가기 어려워지는 구조로 점점 변해가고 있다.

 

이처럼 사회 전반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는 중년의 ‘늙은 미혼’들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필자가 바라는 것은 하나다. 아무쪼록 우리 사회가 유아, 청소년층 및 39세 미만의 청년층뿐만이 아니라, 어느덧 중년이 된 ‘늙은 미혼들’과 노인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봐달라는 것이다.

 

구보는 아직 ‘미혼’인 지금의 젊은 층들의 미래가 될 수 있다. 스스로를 ‘30대 젊은 미혼’이라 여기는 이들도 곧 ‘늙은 미혼’이 된다. 시간은 기다려주는 법이 없다. 상대방의 입장(立場)을 헤아리고, 상대방과 공존(共存)하려 하고, 상대방과 더욱 상생(相生)할 생각을 해야 한다.

 

지금, 우리 한국은 상대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도 절실하고 간절한 사회다.

 

글 강건욱 / 문예지 기자 및 인문학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예술과 문학, 대중문화에 관한 칼럼과 평론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문화평론가 및 프리랜서 인문학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 및 콘텐츠를 기획, 모더레이팅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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