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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강건욱 칼럼니스트 입력 : 2023.01.30 수정 : 2023.01.30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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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自己)’와 ‘거짓’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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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를 위한 空間(18)] 정치인들에게 보내는 편지

- ‘자기(自己)’와 ‘거짓’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길 바라며 -

 

겨울 산행(山行)을 하게 되면 순백(純白)의 옷을 입은 수목들의 설경(雪景)이 자못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푸르름을 자랑하던 소나무들이 쏟아진 큰 눈(大雪)으로 인해 꺾여버린 모습에서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 군상(群像)의 쓸쓸함도 발견하게 된다.

 

로마의 정치 철학자, 세네카(Lucius Seneca, BC4~AD65)는 “모름지기 산다는 것은 싸우는 것”이라고 했다. 어느 집단이든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에서 생존해 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생명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거칠고 혹독한 겨울 폭풍과도 같은 적(適)에 에워싸인 상황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역사가인 크세노폰(Xenophon)이 기원전 4세기에 저술한 전기(戰記)인  ‘아나바시스(Anabasis)’는 이런 극한 상황에서 작은 군사집단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하고 생환하는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고전(古典)은 헬라스(Hellas, 그리스인들이 스스로의 국가를 부르던 이름) 사람들이 페르시아 내전에 용병으로 참가해 내륙까지 진군했다가 실패한 후, 천신만고 끝에 고향으로 귀환하는 과정을 그린 전쟁기다.

 

저자 크세노폰(Xenophon, BC430~BC355)은 군인이자 역사가였다. 그는 플라톤과 동년배로 똑같이 소크라테스의 제자이기도 했지만, 플라톤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저서 ‘소크라테스의 회상’에서 소크라테스를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20세기 최대의 철학자 중 하나인 버트란트 러셀(Bertrand Russell,1872-1970)로부터 “현명한 사람이 한 말에 대한 어리석은 사람의 기록은 정확하지 못하다”라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아나바시스’와 그의 다른 저작인 ‘헬레니카’, ‘키로파에디아’ 등에서 엿보이는 크세노폰은 매우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받는다. 크세노폰은 페르시아에서 기사회생했지만, 아테네인임에도 한때 스파르타인의 편을 들어 추방되는 등 파란만장한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헬라스 군이 페르시아 내전에 개입된 과정은 이렇다. 키루스 2세(KyrosⅡ, BC550~BC530)가 그의 형인 페르시아 왕, 아르타 크세르크세스의 왕위를 빼앗기 위해 피시다이 족(族)을 친다는 명분으로 자신이 태수로 있던 소아시아 지역의 군대와 헬라스 용병을 모으자, 평소 키루스와 교류하고 있던 헬라스 장군들은 중무장 보병 3만 여명을 모병해 참전한다.

 

이들은 처음에는 키루스가 페르시아 대왕을 축출하기 위해 시작한 전쟁인 줄 모르고 참가했다가, 내륙 깊숙이 진입한 상태에서 뒤늦게 원정 목적을 알게 되자 퇴각하고자 했으나, 급료 인상을 내거는 키루스의 제안과 퇴각의 어려움 등을 고려해 할 수 없이 페르시아 대군과의 전투에 임한다.

 

하지만 키루스의 전사와 함께 반란군은 궤멸되고, 패잔병은 페르시아의 왕, 아르타 크세르크세스에게 투항한다. 오롯이 남게 된 헬라스 군은 대왕의 항복 요구를 거절하고, 소아시아 지역의 페르시아 집정관인 팃사페르네스와의 협상을 통해 퇴각 안내를 받으며 퇴각한다. 그러나 곧 그의 계략에 말려 연회에 초대된 헬라스 장군들이 사로잡히고 처형을 당한다.

 

졸지에 장군들을 잃게 된 헬라스 군은 큰 충격을 받고 혼란에 빠지지만, 전 병사들이 참여한 가운데 장군들을 새로이 선출하고 전열을 가다듬어 퇴각하게 된다. 장군들의 몰살 이후 군대가 자멸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헬라스 인들이 두려움에 떨며 투항하거나 분열하지 않고, 스스로의 ‘독자생존’ 방식을 찾아나갔다.

 

이 책은 크세노폰이 직접 장군으로 선출돼 군대를 통솔해 가면서 체험한 전기(傳記) 형식을 띄고 있다. 문체는 화려하지 않으나, 군인답게 군대의 이동과 주둔, 병참 조달, 전투 전개 상황, 통과지역 지형이나 부족들의 생활상 등에 대해 소상히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눈길을 끄는 것은 헬라스 용병들이 다양한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과 방식이다. 헬라스 인들의 강인한 저력과 이상적(理想的)인 지휘관의 모습이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들이 페르시아 제국의 중심부로부터 흑해 연안의 헬라스 식민지까지 진출과 퇴각을 한 행군로는 무려 1,150파라상게스(약 6,325km)에 달하고, 행군 일수는 1년 3개월이나 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부족들과 전투와 협상을 벌이며, 생존을 위한 투쟁을 전개한다. 결국, 흑해 연안의 헬라스 식민지에 도착해 때마침 페르시아 팃사페르네스를 치러 출전한 스파르타 군대를 만나 이에 편입되면서 이들의 험난한 여정은 끝을 맺는다. 수많은 전투를 거듭하며 천신만고 끝에 남은 병력은 6천여 명 남짓이었다.

 

기나긴 퇴각 과정에서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는 페르시아 부족들에 대한 대응방식의 선택의 폭은 매우 좁았다. 이들은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느냐, 아니면 싸워서 정복하느냐 양자택일의 상황에 늘 맞닥뜨려야 했다. 이 때 이들이 택하는 기준은 실로 단순하고 명료했다.

 

그 기준은 ‘무기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을 때보다는 그것들을 가지고 있을 때 더 값진 친구들이 될 것이며, 그리고 우리가 싸워야 한다면 무기들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었을 때보다는 그것들을 가지고 있을 때 더 잘 싸우게 될 것’이라는 하나의 사명(Vision)이었다. 이들은 무기를 버리고 굴종(屈從)을 택하기보다 맞서 싸울 때 비로소 자유(自由)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헬라스 군의 기적적인 생환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동인(動因)은 그들의 용기와 지휘관의 탁월한 리더십이었다. 헬라스 군의 전투력은 페르시아 군을 압도했다. 개개인의 전투능력 뿐만 아니라, 중무장 보병과 경무장 방패병, 투석병, 기병 등을 적절하게 혼합해 활용하는 전술 운용도 뛰어났다.

 

또 생면부지의 적국의 자연지형과 성곽, 도시 및 촌락들의 환경에 대한 정보가 부재한 상태에서 현지인을 활용하며 창조적 전술을 고안하고 실행했다. 아울러 산악과 평야지역, 성채 등에서 각기 다른 진법이나 공격술을 선보였고, 이는 헬라스 군의 현지 적응력과 총체적인 대응 역량을 높여주었다.

 

적국의 한복판에서 헬라스 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에는 페르시아 제국이 여러 부족에 의해 분권적으로 느슨하게 통치되고 있었음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예속(隷屬)과 굴종(屈從)에의 길을 택하지 않고 목숨을 잃을지언정 오로지 ‘자유’를 향해 가는 특유의 자긍(自矜)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은 군의 전술운용 대목이 주목을 끌기도 하지만, 각 분야의 리더들이 조직관리 과정에서의 설득과 협상의 전략에 대한 교훈을 더 많이 얻을 수 있게 해 준다. 책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의사 선택 및 협상 과정에서 리더들이 행한 모습을 보면,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요구 하거나, 자신만의 안위(安慰)를 위한 행동은 결단코 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리더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조직을 선동해 갈등을 조장하거나 혹세무민(惑世誣民)하지 않고, 오로지 공동체를 위한 공명정대(公明正大)와 솔선수범(率先垂範)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었다.

 

더불어 정확하고 합리적인 상황 판단에 의한 설득과 협상으로 모든 이해관계자가 만족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인문(人文)적 리더십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었다.

 

작년 세밑, 우리 사회가 가진 문제점을 조망한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작가 조세희가 세상을 떠났다.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의 와중에서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한 가족의 삶을 통해 당시 우리 사회가 가진 불평등과 갈등을 조망한 이 소설이 쓰여진 당시에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불평등과 갈등의 원인으로 ‘반(反)민주(民主)’가 지목됐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민주주의(民主主義)’라고 하는 우리 인류가 공통으로 지켜 나아가야할 보편적 가치와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정치세력은 중국이나 북한 등 극소수 사회주의 국가를 제외하고는 지구상에 발을 붙이기 힘들어진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한국에서는 버젓이 해묵은 ‘반(反)민주 투쟁’을 부르짖으며 스스로에게 ‘민주화 투사’라는 최면을 걸고, 때 아닌 갈등을 조장하고 대중을 선동하는 정치세력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헬라인들이 극한상황에서 생존할 수 있었던 것에는 따듯한 인간애(人間愛)로 충만한 양심(良心)적인 리더가 있어서였다. 헬라인들은 잔꾀에 능한 리더를 바라지 않았다. 그들은 진정성을 가지고 오로지 국가와 시민을 생각하는 리더를 원했던 것이다. 이점에서 헬라인들의 진정한 리더상(像)은 자기 자신은 부정(不正)과 부패(腐敗)로 악취가 진동하면서도 겉으로는 선량한 서민의 옷으로 포장한 우리의 모 야당 대표(리더)와 그 비위를 알면서도 리더를 보호하기에 급급한 정치인들의 모습과는 근원적으로 다르다고 하겠다.

 

새해가 시작 된지도 어느새 한 달이 다 지나가는 지금도, 모 야당 대표의 개인 비위를 수사하고자 검찰이 소환을 하니 여전히 갈등이 끓어 넘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는 확성기 소리가 난무한다. 주말의 광화문 거리와 용산의 삼각지는 또 어떠한가. 이러한 현상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갈등은 사회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당연한 현상이라고 하지만, 현재 우리가 겪는 상황은 위험한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거짓과 선동, 그리고 편 가르기는 ‘발전적 갈등’이 아닌, ‘소모적 갈등’만을 유발하는 기폭제일 뿐이다. 더 이상 우리는 ‘갈등유발자’가 리더가 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지난 5년간 우리 국민들은 겪을 만큼 충분히 겪었고, 그로인한 폐해는 고스란히 다시 국민들에게 전해지기 시작하고 있다.

 

이렇게 민생(民生)은 날로 어려워지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민초(民草)들의 삶의 의욕은 점점 줄어들며 좌절감만이 커지고 있는 작금에도, 우리 정치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불필요한 소모전에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러한 우리 정치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말은 논어(論語)의 ‘군군신신 부부자자(君君臣臣 父父子子)’다. 정치가는 정치가답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할 때 도덕률(道德律)이 다시금 살아 숨 쉬는 사회가 될 수 있다. 시민여상(視民如像)이란 말을 가슴에 새겨 위민정치(爲民政治)에 힘쓰고, 더는 말장난으로 허송세월해서는 안 된다.

 

아무쪼록 ‘국민의 이익과 번영을 위한 일’을 하고자하는 이 땅의 정치인들은 겸허한 자세로 국민을 대하고, 언제나 선의(善意)의 경쟁 속에서 눈앞에 부딪히는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자제력(自制力)을 기르며, 무엇보다 스스로의 인간성(人間性) 회복에 힘써야 한다. 공동체의 생존(生存)은 이러한 인간애(人間愛)로 충만한 ‘올바른 리더’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글 강건욱 / 문예지 기자 및 인문학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예술과 문학, 대중문화에 관한 칼럼과 평론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문화평론가 및 프리랜서 인문학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 및 콘텐츠를 기획, 모더레이팅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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