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본


오피니언 > 칼럼

법도, 염치도 없는 우리 정치

강건욱 칼럼니스트 입력 : 2023.01.16 수정 : 2023.01.17 20:52
https://newsborn.co.kr/news/news_view.php?idx_no=14591 뉴스주소 복사

정치인들의 위선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사유를 위한 空間(15)] 법도, 염치도 없는 우리 정치

- 정치인들의 위선은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하는가? -

뉴스본 이재명 대표

 

200여개에 달하는 지구상의 국가 중에서 법률(法律)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단 한 국가도 없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도 당연히 법으로써 사회일반이 구동되는 ‘법치(法治)국가’다. 그러나 가장 법을 중요시 여기고, 앞장서서 준수해야 할 입법(立法)기관인 ‘국회’가 누구보다도 법을 경시하고 오용하는 사례를 빈발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우리나라가 과연 제대로 된 법치국가인지 큰 의문이 든다.

 

이 세상에 누구나 법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있다면, 그곳은 다름 아닌 유토피아(Utopia)일 것이다. 그러나 유토피아는 상상(想像)의 이상적(理想的) 공간이다. 서로 상이한 수십억명의 인간들이 살아가는 우리네 현실의 삶은 법률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그렇다면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 국가와 사회를 규율하는 합리적인 법률을 만들고, 운용하고, 따를 것인지는 가장 중요한 당면 과제일 것이다.

 

서양 철학의 기틀을 만든 고대 희랍의 사상가, ‘플라톤(Platon)’은 지성(nous)을 갖춘 입법자가 만든 ‘최선의 법률’(aristoi nomoi)에 통치자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복종할 때 비로소 이상적 법치가 구현될 수 있다고 보았다. 플라톤이 법률은 ‘지성(智性)의 배분’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플라톤은 통치자들을 ‘법률에 대한 시민의 봉사자(hyperetes)’로 규정하고 있다.

 

플라톤이 추구한 ‘법의 지배’(rule of law)는 피지배 대상들에게 강제적 방식이 아닌, 설득과 이해를 구하는 방식으로 다가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플라톤은 강제성(ananke)과 설득(peitho)을 혼화(混和)하여 법률을 제정해야 하며, 민중에 대한 교육(paideia)을 통해 미리 충분히 소통할 것을 강조했다.

 

‘법의 지배’는 오로지 ‘법의 원칙’에 의해서 지배되는 것을 뜻한다. 법이 궁극적 목적이 되고, 통치자와 모든 사람은 그 법 아래에 놓인다. 따라서 통치자가 법을 자의적 전제권력의 수단으로 활용하여 지배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법에 의한 지배’는 전제군주(專制君主)적인 성격의 정치, 즉 전체주의(全體主義)와 밀접하고, ‘법의 지배’는 민주정치와 사법부의 독립 등 명확한 삼권 분립의 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런 점에서 ‘법치’란 동일한 이름과 외양에도 불구하고 동서양이 추구해 온 개념이 서로 극명하게 다르다. 한비자를 대표로 하는 중국 법가(法家)의 사상은 ‘법에 의한 지배’로써 황제의 전제권력을 공고히 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플라톤은 법 위에 군림하는 초월적 군주의 위치를 인정하지 않았다. 군주 1인에 의한 자의적 인치(人治)가 아닌 ‘지성의 배분’으로 확립된 ‘최선의 법률’에 의한 완벽한 철인(哲人) 통치를 바랬던 것이다.

 

플라톤은 ‘훌륭한 법질서’(eunomia)를 위해 시민들 간에 자유(eleutheria)와 우애(philia), 그리고 지성의 공유(koinonia)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덕(arete)을 쌓기 위해 지혜와 절제가 요구되었고, 자연히 이를 함양시키기 위한 시민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플라톤의 <법률>에서 제시한 입법안은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이념과 가치 그리고 국가 질서의 틀을 만드는 데 초점이 맞춰 있다.

 

플라톤의 <법률>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 국가’가 아닌 ‘훌륭한 법질서’를 통한 차선의 ‘아름다운 나라’(kallipolis)를 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근대적 법치(rule of law)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법률은 어떨까? ‘지성의 배분’의 의해 만들어진 훌륭한 ‘법질서’일까? 과연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은 ‘법률에 대한 국민들의 봉사자’란 인식을 가지고 있을까? 나아가 국가 역시 공동체가 추구해야 할 가치와 질서를 존중하는 ‘자유 시민 교육’을 방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국회는 국가를 부흥시킬 ‘지성의 배분(법률)’을 정성을 다해 창안해 내기는커녕,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에 관련한 부분에만 모든 촉각을 곤두세우고, 민생법안에 목말라하는 국민의 요구를 외면하기 일쑤다. 훌륭한 법질서를 통한 ‘이상 국가’를 만드는 첫걸음은 바로 ‘입법자’인 국회의원들의 지성의 함양과 스스로와 국민에 대한 양심(良心), 그리고 자기 혁신에 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과연 우리 정치판에 법(法)이나 염치(廉恥)가 남아있는지 묻고 싶다. 여의도에 있는 ‘높으신 분’들은 걸핏하면 국민들을 향해 법치주의를 외치면서, 스스로는 법을 외면하고 사는 집단적 동질성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이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게 작금의 한국 정치판의 모습이다. 이점에서 사실상 우리나라는 형식적 법치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정치인들은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어려움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나 안중은 오간데 없고, 자신들의 이익과 지향점만을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모범을 지켜야 할 국회의원과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법을 준수하지 않는다면, 이들이 만드는 법은 과연 누구를 위한 법이고, 대체 왜 만드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준법(遵法)정신이란 ‘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자신은 지키지 않고 남에게만 법을 지키라 한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만인에게 공통되는 ‘법’이라 명명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국회의원을 필두로 한 정치인들에게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 말 그대로 ‘무법천지(無法天地)’인 국회에서, 법이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그들이 과연 국민을 위한 법을 제대로 입법화시킬까? 필자는 매우 회의적이다.

 

어느 정치인이 부정(不淨)을 저지르며 현저하게 법률을 위반해 문제가 되도, 자기 당(黨)이라고 옹호하는 모습에 보고 있는 국민들은 분통을 터트린다. 최근 모 야당의 대표는 자신의 개인적 비위와 비리, 부정부패에 대한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당을 총동원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러한 장면에 많은 국민들은 ‘우리나라 정치가 언제부터 이토록 철저하게 개인의 권력 및 이권과 결부되어 그 이익을 공고히 지키려고 집단적으로 사당화(私黨化)도 불사 하는가’라며 혀를 차고 있다. 실제로 며칠 전 야당대표가 수많은 자기 당 국회의원들을 위시하여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가는 모습에서는 보스(Boss)와 생사를 함께 하는 마피아(Mafia)의 그것이 떠올랐다. 

 

이와 같은 ‘집단적 법치 훼손 행위’는 개인 대표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당 전체의 문제라 본다. 소위 철저한 ‘동업자 의식’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든 모습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그들의 생명줄과도 같은 ‘공천(公薦)’이 결부되어 있음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나아가 이 야당 대표는 자신의 개인 비위와 부정(不淨)을 당시의 특수한 시대상이 만들어 낸 역대 대통령들의 고초(苦楚)와 비교하며 역사와 준법(遵法)의 의미 자체를 망각하는 어리석은 우(愚)를 범하기도 했다.  

 

자고로 법은 만인(萬人) 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앞서 모 야당 대표의 모습에서 여실히 보여 지듯 권력을 가지고 있는 정치인들은 법의 원칙을 자꾸 잊으려 하고, 자신에게는 법이 적용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그들이 오랫동안 잘못된 특권의식에 함몰되어 있음도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그들을 이렇게 ‘무소불위, 안하무인의 괴물’로 만든 죄는 우리 국민들에게도 있다.

 

법이란 누구나 ‘지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구경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누구보다 법을 투철하게 지켜야 할, 법을 ‘만드는’ 우리 정치인과 국회의원들은 법을 구경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앞장서서 법을 ‘형식적’으로 취급하려고 한다. 앞선 사례에서처럼 자신의 범죄를 무마하기 위해 위법(違法)을 자행하는 것이 우리나라 국회의원, 야당 대표의 민낯이다. 과연 당신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자녀들에게 어떠한 언어로,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진정한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법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권력자라면 법을 누구보다 준수해야 타의 모범이 될 수 있는 법이다. 결국 권력을 가진 정치인이 더욱 빛나기 위해서는 준법(遵法)이라는 정도(正道)를 가야 한다. 그것이 자신과 자리를 더 빛내는 길이다. 그렇게 원칙이 있는 ‘당당한 정치인’을 국민은 더 존경하고 사랑한다. 

 

아, 한마디 첨언하자면 많은 국민들은 이제 정치인들에게도 ‘법의 원칙’이 적용되어 수사가 ‘원만히’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아무쪼록 수사기관이 외압이나 외풍에 흔들림 없이 ‘거물급’ 정치인들에게도 동일한 법을 적용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글 강건욱 / 문예지 기자 및 인문학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예술과 문학, 대중문화에 관한 칼럼과 평론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문화평론가 및 프리랜서 인문학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 및 콘텐츠를 기획, 모더레이팅 하고 있다.

<저작권자ⓒ 뉴스본.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다른글 보기 no1newsborn@gmail.com

# 태그 통합검색

뉴스 댓글

  • 댓글 300자 한도

Newsborn 'PICK'




주소 :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로 298, 10층 1001-408호 (산암빌딩) | 후원계좌 672101-04-381471(국민은행)
등록번호 : 부산 아00435 | 등록일자 : 2021년 9월 30일 | 발행일자 : 2021년 9월 30일
대표전화 : 1833-6371 | FAX : 0508) 911-1200 | E-mail : no1newsborn@gmail.com (기사제보 및 후원문의)
제호 : 뉴스본 | 대표 및 발행인 : 배문한 | 편집인 : 이승현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현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배문한

Copyright © newsborn, Ltd.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