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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파동(波動)이다

강건욱 칼럼니스트 입력 : 2023.01.16 수정 : 2023.01.1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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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의 원리’로부터 삶을 배우다

[사유를 위한 空間(16)]인생은 파동(波動)이다

- ‘그네의 원리’로부터 삶을 배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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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사는 집 바로 아래에는 다섯 살, 여섯 살 연년생의 어린 남매가 살고 있다. 나는 오전 아홉시가 되면 어김없이 아침 산책을 나가는데,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는 시간과 같아 거의 매일 아침 엘리베이터에서 만나곤 한다.

 

어느 날 오후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파트 놀이터에서 열(熱)과 성(誠)을 다해 그네를 타고 있는 아랫집 어린남매의 모습이 보였다. 이 놀이터에는 두 개의 그네가 있는데, 마침 그 시각 놀이터에는 남매와 보호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남매는 각자의 그네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시계추처럼 파동(波動)을 그리며 흔들리는 그네의 모습에서 나는 불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생은 그네의 움직임처럼 파동이 아닐까? 인생은 그네를 타고 오는 것이 아닐까?’

 

글을 쓰는 일을 업(業)으로 삼고 있으니, 나는 이처럼 생각이 스치는 경우를 그저 ‘감상(感想)이 흐르고, 영감(靈感)이 떠오르는 순간’이라고 간단히 여긴다. 물론 그것이 ‘영적인 생각’인 이유는 특별한 인과성이나 개연성 없이도 툭 떨어지는 무엇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문장으로 떨어질 때도 있고, 이미지나 상징으로 떨어질 때도 있고, 한 덩어리의 이야기로 떨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영감은 일정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압축 파일을 풀듯 3차원적인 해독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전모(全貌)를 드러낸다. 그날 오후 내게 떨어진 문장은 이것이었다. ‘인생은 파동이다.’

 

자, 다시 놀이터로 돌아 가보자. 만일 놀이터에 남매도 없고, 다른 아이들도 없다면 그네는 텅 비어 움직이지 않는 ‘빈 그네’일 뿐이다. 아무도 타지 않고, 그네에 어떠한 에너지도 가하지 않으니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그저 약간의 바람에 그네는 저 홀로 흔들릴 뿐이다. 그러나 그네는 무엇인가? 그네의 목적과 역할은 무엇인가? 그네는 저 홀로 바람에 흔들리라고 만든 것이 아니다. 사람이 타기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다. 사람이 그네에 앉으면 운동(運動)에너지를 발생시키는 주체가 생기는 것이다. 그네에 앉은 사람은 발을 뒤로 굴러 그네가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발은 앞에서 뒤로 구르는데, 그네는 뒤에서 앞으로 나아가니 반작용(反作用)에 의해 그네가 움직인다.

 

그렇게 움직이기 시작한 그네는 당연한 운동 원리에 의해 앞뒤로 오가며 에너지를 생성한다. 그네를 탄 사람이 힘을 많이 가할수록 진폭(振幅)도, 에너지도 커진다. 하지만 높이 올라가 있을 때의 위치 에너지와 중력에 의해 밑으로 내려올 때의 운동 에너지는 ‘역학적 에너지 보전 법칙’에 의해 동일한 값을 얻는다. 이와 같은 반복, 다시 말해 위치 에너지가 운동 에너지가 되고, 다시 운동 에너지가 위치 에너지로 자리바꿈을 하는 반복적인 운동이 지속된다. 그러나 사람에 의해 움직이는 그네도 사람이 더 이상 그네를 탈 생각을 하지 않으면 여지없이 그네는 멈춘다. 힘을 가해 그네를 타던 사람이 가만히 있으면, 공기 저항 등 에너지 손실에 의해 그네가 더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간단한 그네의 작동 원리를 살펴보았다. 결국 그네는 사람이 타라고 만든 것이고, 그것은 사람에 의해 움직이거나 멈춘다는 것. 이 지점에서 나는 한 가지 가정(假定)을 대입했다. 만약 그네를 심심풀이로 타는 것이 아닌, 삶에 있어 누구나 반드시 타야하는 의무(義務)라면 어떤 결과가 생길까? 아마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죽는 날까지 매일 24시간 단위의 수평과 수직 운동(먹고 자는 등의 활동)을 반복하는 것처럼, 그네 타기가 기본적인 생명 활동으로 대체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인생을 ‘산다’고 하지 않고, ‘탄다’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네 인생에서 각자가 삶을 받아들이는 양상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조금이라도 더 잘살아보겠다고 에너지를 지나치게 쓰는 사람도 있고, 삶이 힘들어 중간에서 이탈하기도 하고, 원망과 증오에 불타올라 죄를 저질러 인생을 허비하기도 하며, 망상에 사로잡혀 현실에의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반면, 자선을 베풀며 선행하는 사람도 있다. 이처럼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는 수많은 양태가 있지만, 이 모든 양상이 자기 선택의 결과라고 한다면, 의무적으로 그네를 타는 일에서도 동일한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그네에 앉아 있다고 본다. 살아 있는 내내 그네를 움직여 생명 활동을 유지하고, 그것은 죽음을 맞이해야 비로소 끝이 난다. 하루 24시간 단위로 날마다 생명 활동을 ‘이어가는 것’과 그네를 ‘움직이는 것’은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오로지 그네를 ‘어떻게’ 타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그네를 ‘잘’ 타는 사람, ‘못’ 타는 사람, ‘과욕’을 부리며 타는 사람, ‘의욕을 잃고’ 타는 사람, 아예 그네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써 그네 타기에서 벗어나는 사람 등 지금의 우리네 삶과 다를 게 없다.

 

이처럼 인생의 문제와 그네의 문제, 인생에 대한 이해와 그네에 대한 이해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인생에서는 보이지 않던 현상을 그네에서는 찾아낼 수 있다. 인생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니, 그것을 그네에 견주어 보자. 그네는 그것을 탄 사람이 힘을 가하면서 에너지가 생성되고, 그것은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파동을 만들어낸다.

 

파동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그네와 그것을 탄 사람이 생성하는 파동은 온 우주에 영향을 미친다. 그렇게 보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만들어내는 모든 에너지는 파동이 되고, 다시 그것은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가 상호 영향을 미치며 변화의 기운을 생성해낸다. 온 우주가 파동의 바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오직 자신의 에너지(시각과 관념)에만 사로잡혀 갈등하고, 질투하고, 고뇌하고, 번뇌한다. 파동이 파동에 영향을 미쳐 그 모든 것이 하나의 파동을 이루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삶이 힘든 것이다.

 

“탄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속에서 한시도 멈춤 없이 일어나고 지기를 반복하는 호흡과 심장박동 등의 모든 생리 현상과 뭇 동식물의 생명 현상도 일정한 주기를 따라 반복적인 변화 곡선을 그리는 파동 현상이다. 그뿐 아니라 가장 작은 물질인 소립자로부터 지구의 계절 변화, 태양계와 은하계 등등 광대한 천체의 운동을 망라하여 크고 작은 주기를 따라 움직이고 변화해가며 생멸을 반복하는 모든 것, 곧 우주 전체가 거대한 파동 현상이다.

 - <우주의 홀로그래피> (이균형, 정신세계사 펴냄) 中

 

물리적으로 말해 모든 것은 파동이다. 그네도 파동이고, 우리 인간도 파동이고, 인생도 파동이고, 우주도 파동이다. 인생을 살건 그네를 타건, 문제의 핵심은 모두 파동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인생을 보다 잘 살고, 그네를 잘 타기 위해서는 파동의 특징을 제대로 이해하고 체득해야 한다.

 

우리 인간은 감각 기관을 통해 장파와 단파, 고주파와 저주파 등 모든 종류의 파동을 수신한다. 촉각은 고체, 미각은 액체, 후각은 기체, 시각은 빛의 파동을 포착한다. 거기에는 우주선(宇宙線)을 포함, 수억 광년 떨어진 곳으로부터 오는 파동도 있다. 인간은 이 파동을 신체의 표면으로 포착하고, 그중 일부를 전자기파로 전환해 몸의 경락을 통해 체내에 순환시킨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 모든 일이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잠재의식 층의 자율신경에 의해 이뤄진다고 한다. 이와 같은 우주적 파동의 물결에 의해 몇 십 조나 되는 우리의 세포와 기관, 나아가 몸 전체가 충전되어 생명 활동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요컨대 파동은 우주적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이자 무한 창조의 축제(Festival)라 할 수 있다. 모든 파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면, ‘혼자’라는 분리 불안에서 벗어나 우주의 파동이 빚어내는 향연(饗宴)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파동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주기적 반복’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도 모두 반복이다. 먹는 행위, 자는 행위, 배설하는 행위, 성행위, 온갖 버릇과 습관, 심지어 생각까지도. 우리는 조금 전에 한 행동을 하고, 또 하고, 또 하고...생을 마치는 순간까지 이 모든 것을 매일같이 끝없이 반복한다. 만일 당신이 윤회론자라면, 우리는 마치 게임속의 주인공처럼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면서 쳇바퀴속의 다람쥐처럼 끝없이 윤회, 환생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지겨울 법도 한데, 사실 우리는 이러한 ‘반복’을 별로 지겨워 하지 않는다.

 

“어쩌면 반복이야말로 파동인 우리의 생명을 부지해주는 힘이고, 반복이야말로 새로운 것을 체득하고 체화해 진화하기 위한 생명의 전략이어서 우리의 DNA에는 그 하염없는 반복을 지겨워하는 감각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 <우주의 홀로그래피> (이균형, 정신세계사 펴냄) 中

 

그렇다. 세상에 반복 아닌 것이 있던가? 동일하지는 않아도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그렇다 보니 어디선가 이미 본 듯한(Deja Vu)일도 많다. 입고, 쓰고, 먹고, 보고, 읽고, 듣고, 자고, 싸고, 걷고, 뛰고, 눕고, 생각하고 모든 것이 반복되는 행위다. 삶이란 결국 반복이 불러오는 파동이다.

 

그날 오후 내게 수신된 영감(靈感)도 정보(情報)를 담은 하나의 파동이었다. 매일매일 반복적인 파동을 겪으며 우리 인류는 진화해 가고, 그 가운데에서 우리가 우주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나-너-우리-삶-우주’, 이 모든 것이 다 파동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 인생은 파동을 타고 오고, 또 파동을 타고 간다.

 

이에 나는 데카르트(René Descartes,1596-1650)의 말을 빌려 새롭게 나라는 존재, 우리라는 존재,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정의해 본다.

 

‘나는 파동 한다, 고로 존재한다(Fluctus, ergo sum).

 

글 강건욱 / 문예지 기자 및 인문학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예술과 문학, 대중문화에 관한 칼럼과 평론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문화평론가 및 프리랜서 인문학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 및 콘텐츠를 기획, 모더레이팅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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