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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자기개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강건욱 칼럼니스트 입력 : 2022.11.27 수정 : 2022.12.26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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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를 위한 空間] 진정한 자기개발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기술과 과학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해 가는데, 어딘지 모르게 세상살이는 점점 더 힘들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과학과 기술이 너무 발달한 나머지 혹여 그것을 사용할 우리 인간의 능력부족을 염려해서일까?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연신 매체에서는 자기를 ‘개발(開發)’할 것을 쉼 없이 주문하고 당부하고 있다. 가정에서건 일터에서건 스스로의 소질이나 능력을 더욱 갈고 닦지 않으면, 이른바 ‘자기개발’하지 않으면 작금과 같은 냉혹한 현실에서 리더(Leader)가 되기는커녕 금방 도태되고 말 것이라 잔뜩 겁을 주고 있다.

“리더에 대한 유일한 정의는, 리더란 반드시 ‘추종자’를 거느린 사람이다.” 자못 근엄하기까지 한 이 말은 경영학의 원조(元祖)라 추앙받는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1909-2005)의 <프로페셔널의 조건>에 나오는 문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추종자란 오늘날의 SNS로 비유하면 수많은 팔로어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역사에서는 드러커의 정의에 입각한, 자기개발의 모범답안으로 불릴 수 있는 리더가 있었을까? 필자는 자기개발의 원조 격인 인물은 다산(茶山) 정약용(1762-1836)과 연암(燕巖) 박지원(1737-1805)이 아닐까 한다. 이들은 당대뿐 아니라 이백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도 베스트셀러로 읽히는 저작물들을 남겼고, 그 저서를 통해 시대를 관통하는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B.C145-B.C86)은 곤경과 가난의 한(恨)이 사람을 분발하게 만들어 위대한 걸작을 탄생시키게 하는데, 이를 ‘발분저서(發憤著書)’라는 말로 표현했다. 문자 그대로 ‘사람이 곤액(困厄)을 당하고, 가난한 시절에 마음을 굳세게 먹으면 기필코 역작(力作)이 나온다’는 뜻이다.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1885)의 “궁핍은 영혼과 정신을 낳고, 불행은 위대한 인물을 낳는다”는 말이 스쳐가는 대목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 <사기>라는 불멸의 저작을 남긴 사마천은 가장 치욕적인 형벌인, 생식기를 없애는 궁형(宮刑)을 당한 인물이다. 이러한 가혹한 시련을 겪었음에도 사마천은 세상과 자신을 저버리지 않았다. 가슴속 심연에 새겨진 한(恨)을 수천 년의 역사에 관한 저술을 통해 풀어보고자 했다. 사마천은 자신의 자서전격인 <사기>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편에서 “가슴에 맺힌 한을 풀 수 없을 때 옛날 일들을 기록하고, 미래에 희망을 얻기 위해 글로 남긴다”라며 발분저서 하는 심정을 그대로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분저서로 꼽힐 만한 저작은 대표적으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와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뽑을 수 있다. 정약용은 18년이 넘는 유배지 생활 동안 <목민심서>를 비롯해 장장 500권에 달하는 책을 썼다. 박지원은 좀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가난을 달관한 45세의 나이에 <열하일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처럼 발분저서를 남겼다는 것은 달리 표현하면, 자신에게 드리운 고난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꿋꿋하게 이겨내고, 시대를 관통하는 자유인으로 우뚝 섰다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240년 전, 비가 주룩주룩 오는 어느 여름날 아침, 연암 박지원은 중국 북경으로 가면서 3개월 동안 겪은 여정과 느낌을 빠짐없이 기록했다. <열하일기>는 바로 이 메모에서 탄생했다. 북경으로 가는 길에서 연암은 수많은 수레가 사람과 물건을 나르고, 수레의 소리가 진동하는 광경에 크게 놀라게 된다. 그는 현장에서 느낀 소리가 우레 소리와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당시 조선에는 수레가 지나다닐 만한 길이 전무했고, 도로라고 해봐야 오솔길에 불과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짐은 주로 보부상들이 지게를 지고 날랐다.

당시 조선 관리들이 청나라에 다녀온 횟수는 250년 동안 약 500회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이 북경을 다녀와서 쓴 여행기는 100여 종에 달하지만, 연암처럼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적극 주장하지는 않았다. 연암은 중국인들이 집을 지을 때 벽돌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돌아와서 벽돌 보급을 시도하기도 했다. 연암은 1780년 중국으로 떠나기 전 그간의 중국여행기를 모두 읽었는데, 당시 대표적인 중국 여행기로는 1712년 김창업이 쓴 <연행일기>와 홍대용이 1766년에 쓴 <연기(燕記)>, <건정동필담> 등이 있었다. 연암은 이 책들을 모두 읽고 그간의 모든 중국 여행기를 압도하는 <열하일기>를 내놓았다. 그 비결은 철저한 ‘기록’과 사실에 기초한 ‘메모’에 있었다. 당시 수행원 자격이라고는 하지만 거의 백수나 다름없었던 연암이 특유의 호기심과 관찰력을 바탕으로 철저한 ‘현장 메모’로 탄생시킨 연암의 발분저서가 바로 <열하일기>인 것이다. 이러한 끝없는 ‘기록정신’은 바로 우리가 오늘날 연암에게 배울 수 있는 자기개발의 첫 번째 노하우다.

연암이 <열하일기>를 내놓을 수 있었던 두 번째 비결로는 ‘개성 있는 독서’를 꼽을 수 있다. 연암은 가난했던 탓에 15세까지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16세에 이른 장가를 간 연암은 그때부터 장인에게 가르침을 받게 된다. 연암은 사마천의 <사기>를 좋아한 처숙 이양천(당시 홍문관 교리)의 영향으로 <사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연암은 이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내용을 활용해 글쓰기를 시도한다. 그렇게 해서 그가 최초로 쓴 것이 이순신에 대한 저술인 <이충무전>이다. 이는 <사기>에 나오는 ‘항우 본기’를 그대로 모방해 쓴 글이다. <사기>는 연암에게 있어 창작의 기본서인 셈이다. 오늘날 우리 학생들에게 있어 대표적인 영어 참고서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나, 90년대까지 학창시절을 보냈던 이들이라면 영어를 잘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성문기본영어>부터 시작했다. 명저(名著)들을 모방해 창작을 해나간 연암의 글쓰기는 <성문기본영어>에 나오는 문장을 달달 외우고 쓸 줄 알아야 좋은 영작(英作)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에디슨이 했다는 “모방이 창작을 낳는다”는 말처럼, 좋은 글쓰기란 수없이 모방하고 그것을 다시 응용하는 데서 시작한다. 연암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기>를 비롯해 좌구명과 공양고, 한유와 유종원, 김성탄과 원굉도 등의 글을 읽고 이를 모방해 글쓰기를 했다. 독서광이 된 연암은 이처럼 개성 있는 중국 소설과 수필을 읽고, 쓰기를 모방하면서 <열하일기>라는 대작을 남기며 당대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사상가로 우뚝 서게 된다.

연암이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창조적 자기파괴’의 정신에 있다. 연암은 실학(實學)을 위해 과거를 포기했지만, 계속된 가난에 가족이 굶주림에 지치자 50세의 나이에 지금으로 말하면 9급 공무원이 된다. ‘선공감 감역’이라는 건축 담당 하급 관리가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또한 연암의 굴욕일 수 있지만, 이는 창조를 위한 또 하나의 ‘자기파괴’ 이기도 하다.

한편, 다산 정약용에게는 어떠한 자기개발의 노하우가 있었을까? <다산의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옛 사람은 책을 읽다가 요긴한 대목을 만나면 곁에 쌓아둔 종이를 꺼내 옮겨 적었다. 이렇게 적은 쪽지들이 상자에 잔뜩 쌓인다. 그러면 어느 날 계기를 마련해 상자를 열고 그 안의 내용들을 일일이 검토한다. 초록할 당시에 이미 주견이 서있었으므로, 갈래별로 분류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약용이 자기개발을 위해 활용한 비법은 ‘생산적 독서 메모’다. 그가 500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펴낼 수 있었던 것은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내용을 즉각적으로 메모했기 때문인데, 이를 초서(抄書)라고 한다. 초서는 책의 내용 가운데 중요한 부분만을 뽑아서 쓰는 것을 말한다. 다산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메모를 갈래별로 분류해두었고, 책을 읽으면서 도움이 안 되는 부분은 건너뛰며 읽고, 유용한 내용을 추려내 메모해두는 식으로 독서를 하고 메모를 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책을 읽으면서 필요한 내용을 발췌하면서 나름대로 주견이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이 바로 다산의 ‘생산적 독서법’이다. 다산은 이렇게 해서 열흘이면 100권의 책도 모두 자신의 것으로 소화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이와 같은 생산적 독서법을 잘 활용해 500권에 달하는 책을 쓸 수 있었다.

다산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책을 읽을 때는 다양하게 읽되, 자신의 관심 분야를 정해두고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읽는 게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책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선택과 집중’이다. 독서를 할 때 선택과 집중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책을 읽어도 생산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나중에는 책을 읽는 건지 아니면 흰 바탕위에 까만 글씨를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리게 된다.

아울러 다산이 두 아들에게 편지로 일러준 ‘선비의 양계법(養鷄法)’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그는 아들에게 “닭을 치면서 경험하는 지혜와 실상을 매일 글로 남겨 후세 사람에게 전하라”고 강조한다. 이는 비록 선비가 벼슬에 오르지 못하고, 양계를 하더라도 양계의 경험을 담아 책으로 만들어 전하면 그것이 진정 세상과 ‘소통’하는 법임을 알려준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데, 다름 아닌 일상의 관찰을 기록하는 ‘메모(Memo)’가 가진 위력이다. 예나 지금이나 글이란 자신을 가장 확실하게 포지셔닝(Positioning)할 수 있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연암과 다산, 두 인물에게서 배울 수 있는 ‘자기개발’의 진수는 자신에게 드리운 고난과 상황을 탓하지 않고,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독서와 기록을 그치지 않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대정신을 꿰뚫어보면서 ‘발분저서’ 했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이들의 저서가 당대뿐 아니라 오늘날까지 베스트셀러로 회자되는 것은 바로 자신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바탕으로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아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리이타(自利利他)’라는 말이 있다.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다는 말인데, 이처럼 모름지기 함께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나를 이롭게 하는 데 그치지 말고, 다른 이들도 이롭게 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날 시중에서 강조하고, 강요하고 있는 나만을 위한, 적자생존(適者生存)만을 위한 이기적인 자기개발의 목소리에 함몰되기보다는, 나와 이웃을 생각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소통(疏通)과 공존(共存)을 바탕으로 한 ‘착한’ 자기개발에 힘쓰면 좋겠다. 이것이 다산과 연암, 두 거장이 21세기의 우리에게 들려주고자 했던 ‘진정한 자기개발’의 정신일터이니 말이다.

글 강건욱 / 문예지 기자 및 인문학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하며 예술과 문학, 대중문화에 관한 칼럼과 평론을 쓰고, 저명인사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문화평론가 및 프리랜서 인문학 칼럼니스트로서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며, 성인과 청소년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 및 콘텐츠를 기획, 모더레이팅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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